ASURABALBALTA
• 전시명: 아수라발발타
• 전시작가: 조세민
• 전시기간: 2021년 4월 01일(목) ~ 2021년 4월 26일(월)
• 전시장소: 슈페리어 갤러리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528 슈페리어타워 B1층)
• 주최ㆍ기획: 슈페리어 갤러리
• 협찬: 그립톡, 픽토리움
• 관람시간: 평일 10:00 – p.m. 07:00
• 휴관일: 주말, 공휴일
• 문의사항: 02-2192-3366
* 포스터 디자인: 박선영
슈페리어갤러리에서는 봄을 맞아 팝적인 캐릭터와 동북아 전통 문화의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조세민 작가의 전시를 선보입니다. 작가는 하나의 개체나 세계안에서 여러 다면성이 공존하고 있는 작품 세계를 보여줍니다. 귀엽고 재미있는 이미지들을 유희적 가상공간에 배치하여, 전통과 미래, 일상과 일탈, 삶과 죽음, 우울과 광기 등 현란한 오브젝트들의 조합과 패턴의 향연을 보여줍니다. 작가는 작업을 통해 의미를 찾아 헤매는 삶이 아닌, 의미에서 놓여나는 삶을 살기를 희망합니다. 작품 속 생경한 조합을 통해 새로운 우주적 감수성과 상상력을 슈페리어갤러리에서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노트:
아수라발발타는 일종의 주문(呪文)으로, ‘뜻한 대로 이루어지길’ 하는 바람이나 ‘아수라의 세계에서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된다.’ 는 의미로 쓰인다고 한다. 이 말의 어원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설이 있지만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만 실은 어디에도 없는 말이라 할 수 있다.
불교에서 ‘아수라’는 전쟁이 끊이지 않는 혼란의 세계 아수라도에 머무는 귀신들의 왕으로, 얼굴이 셋이고 팔이 여섯이며 아귀들과 싸우기를 좋아한다. ‘발발타’는 경전에서 ‘일체의 목적’, ‘일심(一心)’의 뜻을 가진 ‘사르발타’나 ‘열반에 이르는’, ’깨달음의 언덕으로 건너간다’는 ‘바라밀다’의 의미와 연관 지어 ‘지옥에 떨어져도 살고자 하는 목적이 있다면 이 또한 건너갈 수 있다.’라는 의미가 아닐까 유추해 볼 뿐이다. 하지만 이 말의 어원이 어떻든 간에 아수라발발타는 화자의 바람을 담아 무의식적인 작용으로 일어나는 일종의 언어 착각, 몬더그린(modegreen) 현상으로 말의 뜻을 초월해 발화하는 이의 마음, 듣는 이의 마음에 따라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는 마치 물 한 그릇 떠 놓고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 작은 돌멩이 하나를 고이며 복을 비는 인간의 마음을 드러내는 말 같다. 아수라장 같은 현실과 알 수 없는 미래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이 작은 몸짓들은 늘 애처롭고 소중하다.
내가 아는 최고의 기복(祈福) 화신은 엄마다. 조상신을 모시는 제사를 지내며, 명리를 공부하고, 절에 기와를 올린다. 어려운 시기에는 점을 보고, 나들이를 할 때면 우리나라 명당 지도를 펼친다. 돌 하나, 나무 한 그루에도 자식들이 잘되기를 빌며, 절에서 얻어온 대추와 밤은 좋은 거라며 내 입에 넣어준다. 엄마가 가족의 안녕을 빌며 제사 지내는 일을 일생의 존재 의미로 내재화하기까지 부모님 세대의 삶과 가부장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에 대해 생각한다. 시부모를 모시며 자식들을 키우고,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느라 본인의 삶을 쏟아붓고도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해서는 정성을 들일 수밖에 없는 그 작은 몸짓을 보면서 많은 딸이 그렇듯 나 또한 그런 엄마를 보면 늘 복잡한 심경이 되곤 했다. 비판적인 시선으로 가족제도를 바라보기도 했고, 삶의 경험치가 쌓이면서 이해되는 부분들도 있었지만 언제나 따뜻한 슬픔과 함께 왠지 모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희석된 구원 시리즈>는 엄마와의 콜라보레이션 작업으로, 여러 층위로 해석할 수 있는 관계적 화합을 시도했다고 할 수 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 송이 한 송이 그려나간 엄마의 꽃 그림 위에 나만의 토템 형상을 얹었다. 엄마가 딸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좋은 의미를 지닌 꽃들을 전통 채색화 방식으로 작업했다면, 나는 플라스틱 소재에 컴퓨터 그래픽 작업을 더해 시각적으로는 이질적 관계처럼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의 화합과 희석 작용을 기대해 본다.
이번 아수라발발타 전시에서는 코로나 19 팬데믹 시기에 작업한 동작 인식 센서를 이용한 <이격거리>와 <축시의 분위기>라는 작업을 선보인다. 처음 경험하는 팬데믹 시기, 이 시대의 불안과 안전거리 강조를 통한 ‘개인’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들을 작가적 관점으로 해석한 작품으로, 지금의 시기를 함께 관통하며 살고 있는 이들이라면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작업이다. 특히 관객이 직접 움직이고 만지고 만들어 보는 행위를 통해 완성되는 인터렉티브 미디어작업은 행위의 주체자에 따라 각자 다른 경험을 함으로써 수많은 형태의 작품으로 완성된다는 점에서 ‘개인’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인터렉티브 미디어, 영상, 설치, 키네틱 작업등 소재와 매체에 있어 다양한 방식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이런 작업 과정은 그 형식 자체로 작업의 주제가 되기도 한다. 여러 매체를 시도하는 방식은 끊임없는 작품의 생성, 변화, 소멸의 프로세스를 거쳐 다음 작업으로 연결되는데, 사회적, 시대적 변화와 개인의 삶이 반영되어 변주의 방향과 폭이 결정된다. 그렇기에 늘 나 또한 관객과 함께 알 수 없는 미래와 다가올 작업이 기대되는 것이다.
나에게 아수라발발타는 모든 일이 잘되게 해달라는 기도라기보다는 일단 시도하고 최선을 다한 후에 약간의 행운이 더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좋은 쌀을 구해 정성껏 씻고 밥을 안치고 불 조절을 하고 나서 맛있는 밥이 되길 바라며 뜸을 들이는 시간의 마음 같은. 실패도 좌절도 있겠지만 조금은 더 나아지길 바라는 작은 속삭임 같은 것 말이다. 하루하루 불확실한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농도 묽은 행운을 바라며 읊조린다. 아수라발발타.